헝가리는 동유럽 영화계에서 가장 깊은 서정성과 독창적인 스타일을 보유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특히 벨라 타르(Béla Tarr)와 라슬로 네메시(László Nemes)는 서로 다른 세대와 미학적 관점을 대표하면서도, 헝가리 영화가 가진 무게감과 예술적 깊이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 두 감독은 인간 존재, 사회 붕괴, 역사적 비극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공유하지만, 서사 구조와 영화적 접근 방식에서는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벨라 타르와 라슬로 네메시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심층적으로 비교하여, 헝가리 영화 미학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탐구해보고자 합니다.
1. 헝가리 영화감독 벨라 타르
벨라 타르는 헝가리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감독입니다. 그는 주류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를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이야기보다는 세계의 존재 그 자체를 화면에 담아내려 했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슬로우 시네마(Slow Cinema)'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대표작 사탄탱고(1994)는 무려 7시간 1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갖고 있으며, 대규모의 붕괴된 농촌 공동체를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공허와 타락을 서사화합니다. 이 영화에서 타르는 느린 롱테이크를 통해 일상의 지루함, 무력함, 반복을 직접 체험하게 만듭니다. 플롯은 파편적이며, 사건 간 인과관계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목적 없이 움직이며, 세계는 희망 없는 순환 속에 갇혀 있습니다.
촬영 기법에서도 타르는 긴 테이크와 천천히 이동하는 카메라를 사용하여 시간의 물리적 흐름을 관객에게 강요합니다. 자연광, 음산한 색조, 비어 있는 공간은 인간 존재의 황량함을 시각적으로 강화합니다. 대사는 절제되어 있고, 침묵은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벨라 타르의 스토리텔링은 사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세계를 관조하고 체험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인간이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야기의 추진력을 제거하고 관객을 '시간' 그 자체와 대면하게 만듭니다. 이로써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시간과 존재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2. 라슬로 네메시의 역사 재현
라슬로 네메시는 벨라 타르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신의 영화적 언어를 명확히 구축해냈습니다. 그는 서사적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을 이야기 속에 몰입시키는 독창적인 연출 방식을 선보입니다. 네메시의 영화는 역사적 참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심리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초점을 둡니다.
대표작 사울의 아들(2015)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배경으로, 사울이라는 인물의 단 하루를 좁은 시야를 통해 그려냅니다. 영화는 얕은 피사계 심도를 활용해 주변 세계를 흐릿하게 처리하고, 주인공의 뒷모습이나 옆모습만을 따라가는 촬영 방식을 통해 관객을 철저히 사울의 주관적 감각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네메시의 스토리텔링은 목표 지향적입니다. '죽은 아들의 시신을 장례치른다'는 단일한 목표가 영화 전반을 이끌고, 이는 관객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동시에 카메라의 제한된 시야는 관객이 전체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차단하여, 당시의 공포와 혼란을 실감 나게 전달합니다.
사운드 디자인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폭력과 고통의 소리들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시각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비극을 오히려 더 강렬하게 체험하게 만듭니다. 네메시는 '목격자'가 아닌 '체험자'로서 관객을 포지셔닝하여, 역사적 비극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3. 벨라 타르와 라슬로 네메시 차이
두 감독 모두 인간의 무력함, 사회의 붕괴, 역사적 비극이라는 공통된 테마를 다루지만, 이를 서사화하는 방식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벨라 타르는 이야기를 해체하고, 플롯을 느슨하게 구성하며, 관객이 이야기의 외부에 서서 세계의 붕괴를 '목격'하게 만듭니다. 그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세상의 무상함을 보여주기 위해 서사적 추진력 자체를 제거합니다.
반면, 라슬로 네메시는 강한 목표와 긴박한 전개를 설정하고,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침투'하도록 만듭니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선택과 감정적 반응을 탐구하기 위해 몰입과 주관성을 극대화합니다.
카메라 전략에서도 타르는 거리감을 유지하는 고정 숏과 느린 패닝을 사용하는 반면, 네메시는 주관적 카메라와 좁은 시야를 통해 감각적 몰입을 유도합니다. 타르의 영화는 광활한 세계 속의 인간을, 네메시의 영화는 좁고 폐쇄된 세계 속의 인간을 보여줍니다.
결국, 벨라 타르와 라슬로 네메시는 헝가리 영화가 세계를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시선을 대표합니다. 하나는 존재의 본질을 묵시록처럼 담담히 드러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 현실을 개인적 체험으로 녹여냅니다.
결론
벨라 타르와 라슬로 네메시를 비교하면, 헝가리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 전략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타르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세계의 무너짐을 시간 그 자체로 체험하게 하며, 네메시는 역사적 참상을 한 개인의 감각을 통해 심리적 체험으로 전환시킵니다.
두 감독 모두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공통적으로 보여주지만, 접근 방식은 정반대입니다. 타르가 관조적 거리감과 묵직한 체험을 선사한다면, 네메시는 몰입적 긴장감과 감정적 충격을 제공합니다.
헝가리 영화는 이처럼 다양한 서사 전략을 통해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복잡한 질문을 던집니다. 벨라 타르와 라슬로 네메시의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는 것은 단순히 영화적 체험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는 특별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두 감독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